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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와 사이키델릭의 집합체인 영화
얼마 전 DDP뮤지엄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시 팝 아트>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전을 했었는데 그 때 한참 일에 치였을 때라 너무나도 사랑하는 작가의 전시를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남아있었는데, 얼리버드 티켓 광고에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이름이 보이자 마자 전시 설명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예매를 해버렸습니다. 물론 전시는 좋았고, 호크니의 작품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전시의 주요 주제는 호크니의 작품이 아닌 '브리티시 팝 아트'였습니다. 사실 팝 아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맨 마지막 호크니 섹션에 가기 전까지는 조금 괴로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전시에서 다시 만난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 포스터가 너무 반가웠습니다.
저는 팝 아트의 키치함과 가벼움, 상업성을 조금 괴로워하는 편이지만, 팝 아트가 가진 사이키델릭한 매력은 그것만이 지닌 힘이라고는 생각합니다.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현란한 색상들의 구성과 배치 앞에서 어지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여 도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흐트러트리는 힘이 한 편으로는 에너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이키델릭이 한참 유행하던 그 때는 독재와 폭력이 난무했던 시대였기에 사실 사람이 제정신으로 멀쩡히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쉽게 볼 수 없어서 더 궁금하고 그리운
저는 이 영화를 대학생 때 미국인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젊은 시절 히피의 삶을 살았던 그녀의 어머니가 소장한 DVD로 보았습니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포스터에 등장하는 저 캐릭터들로 이야기가 구성되며 비틀즈는 영화 속에서 히어로 역할을 합니다. 포스터 오른쪽에 있는 얼굴이 파란 캐릭터가 악당이고 저 캐릭터가 세상을 위협하며 악당짓을 저지를 때 비틀즈가 저들을 평화와 사랑의 노래로 악당을 무찔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영화의 OST 앨범이 'Yellow Submarine'입니다. 자막도 없이 영화를 보느라 뭐라고 하는지 듣는 것만해도 힘들고, 색상이 너무 현란해 눈도 아팠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반가운 OST 덕분에 영화를 보는 기분보다는 90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기분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틀즈가 악당을 무찌르는 부분도 간디의 비폭력 평화 시위처럼 어떤 무기나 능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사랑으로 해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총과 칼이 아니라, 폭력이 아니라, 정말 꽃과 사랑, 노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세상을 꿈꿨던 존 레논이 총에 맞아 죽은 것은 너무 아이러니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찾아보니 2012년에 복원된 DVD를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음악앨범인지 영화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음원도 리마스터되어 다시 출시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는 영감의 원천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은 비틀즈를 꼽으라면 저는 김연아 님의 'Imagine'을 꼽겠습니다. 그 무대는 김연아 님의 은퇴 무대였고,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갈라쇼였기에 의미가 있었으며, 러시아가 편법적으로 금메달을 딴 경기였기에 거기서 연주되는 평화의 노래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선우정아 님의 뮤직비디오 중 'Black Coffee'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사이키델릭한 느낌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때 그 뮤직비디오를 보면서도 스치듯 'Yellow Submarine'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Yellow Submarine' 이전에는 정돈되고 정제된 미술과 예술이 존재했던 세계였기에 그 예술계의 질서를 깨부숴버린 팝 아트와 사이키델릭이 가진 '처음'의 힘과 에너지는 그것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생산된다고 해도 근원이 가지고 있는 뿌리처럼 힘이 셉니다. 평화를 부르짖는 이유는 폭력이 있기 때문이고, 정제된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정제됨 역시 하나의 폭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Yellow Submarine'은 마치 핵폭탄처럼 같은 힘이 있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핵폭탄이라니,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그만큼 강력합니다.그것이 제 취향이 아님에도 자꾸 생각이 나고 한 번씩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