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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아멜리에

나의 프랑스, 아멜리에

대학생 때 저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유럽 여행을 한 번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때 유난히 그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든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멜리에'입니다. 한참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저의 사춘기 내내 '파리'를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마을'로 각인시켰고, 저는 내가 사는 이 동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채로운 색감과 예술적인 심미가 살아있는 그곳을 마치 고향처럼 오랫동안 그리워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파리'는 그렇게 따뜻하지도, 동화 같지도 않은 '도시'였고,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멜리에'도 '코코 샤넬'이 되어 나이를 먹었지만, 저는 여전히 이 영화가 가진 따스함과 사랑스러움을 사랑합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브레토도'의 낡은 상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아주 살짝 비켜나간 동화

이 영화가 가진 마성의 매력은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멜리에'같이 외로움을 느끼며 혼자 살아가고 있는 여자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남에게 선행을 배푸는 여자도,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사랑하는 남자를 대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여자도 분명 현실에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만드는 것은 이 영화의 색감과 오드리 토투의 크고 투명한 눈망울입니다. 성인 여자이지만 영화 전반에서 마치 소녀 같은 인상을 주는 그녀는, 그림 그리는 노인 라파엘과 함께 있으면 더욱 소녀 같아 보입니다. 즉석사진기에서 누군가가 버리고 간 사진을 모으는 니노의 취미라는 것 역시 있을 법 하지만, 사실 누가 그런 취미를 가지고 사냐 싶은 특이한 취미입니다. 사실 심미안 적인 화면의 배치나 아름다움으로 따지면 웨스 앤더슨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웨스 앤더슨이 속에 아주 차가운 얼음을 품은 영화라면, 아멜리에는 크리스마스 난로 같은 따뜻한 영화라 삶을 대하는 인간의 온도가 다릅니다. 그렇다고 신파적으로 따뜻하지 않고, 그저 살갗을 맞댄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 이 영화는 엄마 아빠들이 이제는 말도 좀 통하고, 부모에게 예쁜 짓도 할 줄 아는, 딱 사랑스러울 만큼 자란 자신의 자녀가 더 이상 크지 않길 바라게 되는 그 시점만큼의 사랑스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파리에 직접 다녀오고 나서, 마치 그 사랑스럽던 소녀가 다 커서 신경질적이기 그지없는 사춘기 소녀가 되어버린 것 같이 저는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잃었지만, 너무나 다행히도 영화는 낡거나 변질되지 않기에 그 사랑스러운 시점에 멈춰버린 아이처럼 저에게는 소중한 한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나의 그 어느 부분도 영화 속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저의 사춘기의 한 부분을 품은 채로 말입니다. 

 

내 집 안마당으로 들어온 프랑스

아멜리에가 먹던 크림브륄레를 처음 연남동 카페에서 먹던 날, 저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회색빛이 가득하던 나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멀리있던 빨갛고 초록색으로 가득하던 프랑스가 내 안마당으로 한 발자국 쑥 들어온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화가 많이 교류되고 시대가 많이 변하다 보니, 동네 카페에서 프랑스 디저트를 먹을 수도 있고, 프랑스의 소녀들이 한국의 BTS를 사랑하기도 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별 것 아닌 그것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처럼, 저에게 큰 쉼표가 되어주었습니다. 문화사대주의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현실에 갇혀있는 것만 같은 답답한 기분이 들 때는, 그렇게 낯설고, 그렇게 소소한 것들이 일상에 갇힌 나를 울타리 바깥으로 꺼내어 숨을 쉬게 합니다.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단지 사치나 허세로서의 작용일 수도 있겠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문화과 사회적 규칙들이 적용된 세상 속에 이방인으로 살아보는 것은 외롭고 두렵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경험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부딪쳐 보아야 내가 누군지,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똑똑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뻔한 말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문을 열고 나와 니노를 만난 아멜리에의 세상이 넓어진 것처럼.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나와 서로와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하루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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