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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살을 맞대고 있는 판타지

영화의 시작은 한강에 나타난 괴물입니다. 최근에야 부산가는 KTX에서 좀비가 나타나고,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사자들이 나타나는 영화들이 꽤 많아졌지만, 2006년 이 당시에만 해도 내가 매일 출퇴근하면서 건너다니는 한강에서 괴물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기술로 꽤나 현실적으로 구현된 괴물의 모습도 흉측하기 그지없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흉측했던 것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들이 무서운 귀신이야기를 하며 여름밤을 지샐 때,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딸을 구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절규를 미친 사람의 소리라 무시해버리고, 딸을 구하려는 가족들의 노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찰들. 존재도 정확하지 않은 바이러스에 공포로 벌벌 떠는 사람들. 한 때는 동료였으나 현상금 앞에 동료를 팔아버리는 선배. 보는 동안 극적인 전개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지만, 말그대로 가슴이 미어질듯 답답하기도 하며, 괴물이 나오는 장면보다 사람을 보는 장면이 소름이 돋았던 영화였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목숨 던져 구하려던 존재가 마지막까지 지키던 생명

이 영화는 사실 괴로운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원스러운 구석이 없습니다. 결말마저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영화 대사 중에서도 "뭔 하나님이 이렇게 협조를 안해주냐?"라고 소리치는데, 정말 신의 가호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모든 가족들이 정말 모든 걸 다 던져 구하려고 했던 딸 현서는 결국 주검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하나 완벽하고 뛰어나지 않은 소시민들이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한 가족이란 히어로들은 승리하지만, 패배합니다. 경찰이 협조를 해줬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현서는 죽을 힘을 다해 살리기 위해 괴물의 코 앞까지 왔는데 죽어버립니다. 현서는 가족들의 피를 물려받은 딸 답게 그냥 피해자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자신도 두렵고 무서웠으면서,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주검은 가족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서의 아버지 강두는 살아남야 양자로 삼은 세주와 함께 밥을 먹는데, 어둠 사이에 기척을 느끼자 총을 집어듭니다. 딸을 잃은 공포와 고통에서 그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족들을 몰아세웠던 가상의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발표가 나옵니다. 그렇게 몰아세우지 않았다면, 현서는 살았을 텐데. PTSD를 겪는 아버지와 두려움에 떠는 아이, 고통 속의 가족들을 두고 영화는 끝이 나버립니다. 

 

괴물은 아직 살아 있고, 죽지 않는다

보통 좋은 영화는 두세번씩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두 번을 보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판타지 요소를 가진 영화였지만, 너무 현실같았습니다. 저는 SBS에서 방영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날의 이야기>를 챙겨보는 편인데, 사실 영화 <괴물>과 그 방송에서 나오는 몇몇 에피소드들은 모양이 닮아 있습니다. 무책임한 방임 속에 버려진 국민들, 끝나지 않은 고통, 반성과 사과 없이 그저 흘러가버린 세월.  사실 괴물은 모양만 달리할 뿐, 내 인생에 갑작스럽게 끼어들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모든 것들은 괴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빨이 없고, 꼬리가 없을 뿐, 내 의지와 내 인생과 상관없이 쳐들어와 내게 소중하던 것들을 꺠부수도 짓밟는 수많은 존재들이 세상에 넘쳐납니다. 어떤 것은 범죄의 모습으로, 어떤 것은 권력의 모습으로 쳐들어와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립니다. 남은 사람들은 평생 고통과 상처 속에 살아가고, 그 상처를 꾹꾹 누르며 하루를 살아도, 그 사건을 회상하는 인터뷰를 하며, 흐느끼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 방송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픽션이 아닌 실제 역사적인 사건들이라, 나오는 패널들도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하며 괴로워하며 눈물 흘립니다. 사실 어느 날은 이야기가 너무 괴로워 내가 왜 일부러 이 방송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나 고민한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방송을 보고 기억하는 것은, 아직도 현실 속에 이렇게 한강 밑에 자리잡아 아무렇지 않게 내 가족의 삶을 무너뜨리는 '괴물'들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괴물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기억해야, 제발 한 마리라도, 잡혀서 누군가의 가족은 위로를 받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득과 명예를 위해 내 국민, 내 가족의 안위와 고통은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게 현실입니다. 부디 그것이 현실일지라도,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부족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했던 가족들의 모습처럼, 실패할지라도 두 눈 부릅뜨고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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